브람스를 좋아하세요...
프랑스 문단의 매력적인 작은 괴물, 섬세한 심리 묘사의 대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그려 낸 사강, 그 난해하고 모호한 감정
문구들
그녀는 자아를 잃어버렸다. 자기 자신의 흔적을 잃어버렸고 결코 그것을 다시 찾을 수 없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그녀는 열린 창 앞에서 눈부신 햇빛을 받으며 잠시 서 있었다. 그러자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라는 그 짧은 질문이 그녀에게는 갑자기 거대한 망각 덩어리를, 다시 말해 그녀가 잊고 있던 모든 것,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던 모든 질문을 환기시키는 것처럼 여겨졌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기 자신 이외의 것, 자기 생활 너머의 것을 좋아할 여유를 그녀가 아직도 갖고 있기는 할까?
“그 반 덴 베시라는 청년이 나를 그 연주회에 초대했어. 나는 달리 할 일이 없었고. 그런데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더 이상 알 수가 없더라고…… 믿어져? 내가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어떤지 더 이상 알 수도 없다는게……”
그녀는 웃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그맣게, 이윽고 웃음소리가 점점 커졌다.
…
로제의 머릿속에서 폭풍우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생략) 그것보다도, 도대체 그녀는 지금 왜 웃고 있는 것일까?
책을 읽으면서 제목이 어떠한 방식으로 스토리에 스며들지 궁금증이 커져만 갈 때쯤, 제목이 처음 등장했다.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조차도 잊고 살아가던 폴에게 시몽의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그녀의 머릿속을 강타한 하나의 철퇴와 같았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자신만의 가치관이라는 것을 정립한다. 나는 흔히 이를 ‘인생의 기둥 원칙’이라고 표현한다. 살아가는데 기둥이 되는 자신만의 원칙. “세계인권선언의 신전”과 같이 몇 개의 기둥들이 지붕, 즉 삶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무지보다 잘못된 가치관이 더 위험하듯, 이 견고한 기둥들은 잘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사소한 질문 하나가 기둥을 무너뜨리기도 한다. 폴의 경우가 그렇다. 시몽의 한 질문이 40년을 살아온 그녀의 기둥을 무너뜨렸다.
우리는 ‘자신’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사실 안 되는 건 아니다. 허나 내가 나를 잃어버리면 내 삶, 내 인생이 너무나 아까울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내가 내 자신을 모르면 누가 나를 알아주는가?” 하는 어디선가 들은 질문도 인상 깊게 박혀있다. 현생이 힘들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살아가는 이유, 내가 행동하는 이유, 내가 선택하는 이유들을 이따금씩 돌아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전진이라고 믿는다. 미래에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제목에는 물음표가 아닌 온점 세 개라는 점이 차별점이다. 시몽에게서 질문을 받고 머릿속에 되뇌이는 폴의 모습을 형상화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죄송합니다. 실제로 제겐 당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저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는 질투심은 자신이 소유한 것에 대해서만 가질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에 드는 문구였다. 질투심은 자신이 소유한 것에 대해서만 가질 수 있는 권리이다. 나는 ‘모든 사람은 다른 사람을 비난할 권리가 없다’라는 말을 많이 한다. 아무리 상대방이 잘못했어도, 그 사람을 내가 직접 비난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잘못한 사람은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을 것이고, 그러려고 법과 규칙이 있는 것이고.. 너가 뭔데 다른 사람을 비난하냐? 위 문구도 마찬가지로 인간의 다른 인간에 대한 ‘권리’의 이야기이다.
이 문구의 ‘질투’는 사실 우리가 사용하는 의미와는 조금 다르다. 문맥상 “소유욕을 가지다”나 “집착”과 같은 의미로 받아들였다. 내 것이 아닌 물건, 내 것이 아닌 사람 (= 애인, 부인) 에게는 조금이라도 집착을 해선 안 된다. 가령 썸을 타는 관계라고 할 지라도, 앞서가거나 집착하는 것은 금물이지 않는가. 냉철하게 바라보면, 애당초에 아무것도 아닌 관계이다. 상대방이 연락을 해줄 이유나 명목조차 없는.
폴은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들이 처음으로 함께 밤을 보낸 날 시몽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생략) ‘자는 체하려면 애정이 지나치든가 권태가 지나치든가 해야겠군.’ 하고 그는 막연하게 생각했다. 이제까지 권태가 지나친 쪽의 경험만을 해 온 그는 잠든 폴에 대해 순수한 열정을 바친 숫처녀에게보다 더 큰 책임감을 느꼈다. 두 사람은 그렇게 조심스럽게 감동되어 각자 자고 있는 체하며 상대가 깰까 봐 꼼짝도 하지 않은 채 몸을 맞대고 서로를 지켜보며 밤을 지새웠다.
시몽은 행복했다. 그는 자신보다 열네 살 연상인 폴에게 열 여섯 살짜리 여자아이에게보다 더 큰 책임감을 느꼈다.
무려 열네 살이나 연상인 여자와 사랑을 하게 된 시몽이, 상대가 나이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더 큰 책임감을 느꼈다는 심리 묘사가 이 문구를 포함하여 책의 곳곳에 드러났다. 처음엔 이 심리가 신기했는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책임감이 애정으로부터 기원하여, 애정의 척도로 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에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까지 합쳐져 시몽은 엄청난 책임감을 느낀 것이다. 나였어도 그랬을 것이다.
“모르지. 어째서 당신은 내가 미래를 준비하느라 현재를 망치기를 바라는 거지? 내가 관심 있는 건 오직 내 현재뿐인데 말이야.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해.”
20대 중반 시몽의 패기가 느껴지는 문구다. 한 단어로 표현하면 ‘낭만’이다. 성공 욕심이 많은 대한민국의 20대로서, 남은 험난한 20대를 대비하여 마음 속 고이 접어 숨겨두었던 낭만을 일깨워주는 문구였다.
“알다시피 난 지금 당신과 함께 있어서 무척 행복해. 하지만 내가 바라는 건 그 이상이야. 난 당신도 나와 함께 있어서 행복했으면 좋겠어. 지금 당신은 행복해지기에는 지나치게 로제에게 집착하고 있어. 당신은 우리의 사랑을 우연한 것이 아니라 확실한 그 무엇으로 받아들여야 해. 내가 그렇게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표현이 멋있어서 적었다. 우연한 것이 아니라 확실한 그 무엇으로 받아들여야 해.
후기
한 남자 로제만 사랑하는 폴, 그러나 여러 여자들과의 관계를 즐기는 로제, 이 사이에 끼어들어 순수한 사랑만으로 접근하는 시몽. 폴은 일방적으로 주는 사랑에 익숙해져 있다가 시몽을 통해 ‘자신’을 되찾고 받는 사랑에 유혹되지만, 결국 견디지 못하고 돌아간다. 그리고 그 첫 날부터 바뀔 것 같았지만 전혀 바뀌지 않은 로제의 모습으로 책이 마무리된다. 소수의 주인공만 등장하여 생생한 심리 묘사를 맛볼 수 있었다.
가볍고 재밌게 읽은 고전 책이었다. 이 책을 스물 네 살이 적었다는게 처음부터 끝까지 믿겨지지 않았다.